진짜 ‘디자인서울’, 집단지성으로 만든다
2010. 05. 17(0) 오픈컬처 |
‘비공식 불법 디자인서울 캠페인.’ 소셜 미디어를 즐겨찾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법도 하다. 이름부터 불온하고 전복적 냄새가 풍기는가. 걱정마시라. 재미있고 뜻 깊은 실험 프로젝트 정도로 해두자.
올해는 서울시가 국제산업디자인단체총연합회(ICSID)에 의해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된 해다. ‘세계디자인수도’는 도시 발전 과정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ICSID가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2년마다 선정한다. 서울은 2007년 선정돼, 2008년부터 관련 행사와 홍보에 힘을 쏟아왔다. ‘디자인서울 거리 조성’, ‘서울해치택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등이 대표 사례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서울 거리 곳곳에서 ‘세계디자인수도-서울’나 ‘서울이 좋아요’란 문구가 박힌 포스터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헌데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서울이 정말 ‘세계디자인수도’란 지위에 걸맞는 도시일까.
세계디자인수도 서울 2010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소개를 보자. 서울시가 바라보는 ‘디자인 수도’는 ▲사람 중심의 살기 편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언제 어디서나 막힘없이 소통하는 도시 ▲서울만의 개성으로 서울다움을 구현하는 차별화된 도시 ▲시민 모두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창의 도시로 요약된다. 사람을 생각하고, 소통하고, 개성 있고, 시민을 위한 도시란 얘기다.
헌데 낯설다. 우리가 아는 서울이 과연 이런 도시였던가. ‘디자인서울’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김성도(@pengdo)씨를 포함한 20대 청년 6명이 ‘비공식 불법 디자인서울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 것도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시장 주도로 단기간에 진행되는 디자인 사업들이 시장이 바뀌고 나서도 온전히 가치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불과 20년 앞을 내다보고 달려나가는 개발주의 도시계획이 디자인이라는 이름만을 덮어쓰고 포장된 채 진행되는 것이 아닌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심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서울시에서 강요하는 디자인서울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디자인서울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캠페인을 처음 기획한 서울대학교 디자인학과 4학년 정우성(25, 가명)씨 생각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 같아 반가웠지만, 서울대입구역 앞에서 바로 이 ‘디자인’ 때문에 농성 중이던 노점상인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그런 고민을 혼자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요컨대 ‘디자인서울’이란 허울에 가려진 ‘진짜’ 서울 주인공들을 되찾고, 이 주인공들이 직접 서울을 디자인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다.
‘비공식 불법 디자인서울 캠페인’은 ‘우리’가 서울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다듬는 운동이다. 참여 방법이 재미있다. 참가자들 목소리를 받아 스티커로 만들어 서울시 홍보 포스터 ‘서울이 좋아요’에 붙여 서울 거리 곳곳에 부착한다. 서울에 대한 칭찬 일색 대신, 서울 디자인정책에 대한 불만과 항의, 조언으로 포스터를 꾸미자는 얘기다. ‘서울이 좋아요’ 홍보포스터를 ‘서울, 이것만은 고쳐주세요’로 변용하니 ‘불법 프로젝트’라 부를 만도 하다.
정우성씨는 이지별씨의 ‘더 버블 프로젝트’(The Bubble Project)에서 캠페인 영감을 얻었다. 이지별씨는 2001년 뉴욕 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당시, 참신한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광고회사에 대한 불만과 거리 광고들에 대한 거부감과 최책감을 덜고자 ‘더 버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빈 말풍선이 가득 담긴 스티커 용지를 공공장소에 놓아두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원하는 글을 적어 광고판에 붙이는 실험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기업 상업광고 틈새를 뚫고, 재기발랄하고 튀는 거리 커뮤니케이션 채널 가능성을 보여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공식 불법 디자인서울 캠페인’은 참여 채널도 다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로 넓혔다는 점에서 보다 확장된 실험이라 하겠다. 트위터(@ilikeseoul)와 미투데이(ilikeseoul), 캠페인 웹사이트로 제안 문구를 보내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AI파일을 내려받아 직접 디자인한 뒤 haechi@ilikeseoul.org로 보내도 된다. 문구 모집은 6월24일까지 진행된다.
캠페인 진행팀은 모든 응모작에 코드를 부여하고 원형 스티커로 인쇄해, ‘서울이 좋아요’ 포스터에 붙여 서울 거리에 부착한다. 포스터 부착 작업은 ‘해치맨’이 맡는다. ‘해치맨’은 광화문광장 해치서울 기념품점에서 파는 해치 인형을 머리에 쓴 캠페인 행동대원이다. 서울 거리에 붙은 포스터는 아이폰 등 GPS 위치정보가 기록되는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공개한다. 문구를 응모한 사람은 자신이 응모한 스티커가 어디에 어떻게 붙었는지 구글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올라온 사진과 제안받은 문구도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하다.
캠페인 진행팀은 6월2일부터 24일까지 인사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는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시에서 이번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캠페인 결과를 단행본으로 제작해 출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캠페인 진행 기간 동안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통해 실시간 길거리 이벤트도 벌일 계획이다.
이 기사의 출처는 http://www.bloter.net/archives/31215/trackback 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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